AI 시대에 레거시가 자산이 되는 조건
인프런의 「2026년 개발자 채용시장의 현실: ‘레거시’에서 기회를 찾는 법」을 봤다. 전 토스페이먼츠 기술이사 김재민님과 인프랩 CTO 향로님의 대담 + Q&A 세션 구성이다.
결론부터,
만드는 비용이 0에 가까워지면, 평가 대상은 만든 것에서 판단한 것으로 옮겨간다.
1. AI로 만든 프로젝트는 여전히 쓸모가 있다. 다만 용도가 바뀌었다
“AI로 만든 프로젝트를 이력서에 써도 되나요”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써도 되지만 증명하려는 대상을 바꿔야 한다는 것이었다.
예전에 사이드 프로젝트가 증명한 건 “이 스택을 다룰 수 있다”였다. 그건 만드는 데 시간이 들었기 때문에 성립하던 신호다. 주말 두 달을 쓴 사람과 안 쓴 사람이 구분됐다.
지금은 그 비용이 사라졌다. 만들었다는 사실 자체는 정보량이 거의 없다. 그러니 남는 신호는 선택이다. 왜 그 도메인을 골랐는가, 그 도메인의 무엇이 불편해서 이걸 만들었는가, 만들면서 알게 된 그 도메인의 예외 케이스는 무엇인가.
- (전) Spring Boot + Redis + Kafka로 예약 시스템을 구현했습니다
- (후) 이 도메인의 예약은 취소 정책이 A/B/C로 갈리는데, 기존 서비스들이 B를 잘못 처리하고 있어서 그 부분을 이렇게 다뤘습니다
2. AI 활용 능력 검증은 결과물이 아니라 통제 방식을 본다
과제를 주고 코드 완성도를 보는 걸로 끝나지 않고, AI에게 어떤 그라운드 룰을 걸었는지를 확인한다는 것.
AI로 과제의 완성도가 비슷해진 시점에서는, 물어볼 수 있는 게 결과물 자체가 아니라 그 결과물이 만들어진 절차가 된다.
여기서 답할 수 있어야 하는 건 대략 이런 것들이다.
- AI에게 금지한 것이 무엇인가. 그리고 왜 금지했는가
- AI 출력을 기각한 사례가 무엇인가. 무엇을 근거로 기각했는가
- 같은 실수가 반복되지 않게 하려고 무엇을 남겼는가. 룰 파일, 테스트, 린트 규칙, 리뷰 체크리스트 등..
- 그 규칙이 실제로 작동한다는 걸 어떻게 알고, 어떻게 보장하는가
나는 이전 글에서 “AI를 잘 쓴다”를 “자기 작업의 정답 판정을 자동화할 수 있다”로 정의했는데, 면접에서 검증되는 것도 결국 같은 지점이라고 본다. 규칙이 있다는 주장과 규칙이 지켜지는지 기계가 확인한다는 사실은 완전히 다른 얘기다.
나도 처음 이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졌을 때 구체적인 사례가 바로 안 떠올랐다..
3. 희소성이 달라졌다
“레거시는 독이 아니라 기회”라는 말이 와닿았다.
신규 프로젝트는 컨텍스트가 거의 없다. 그래서 AI가 잘한다. 그리고 잘하기 때문에 결과물이 서로 비슷해진다. 반대로 레거시는 컨텍스트가 코드 밖에 있어서 AI가 못 한다. 못 하기 때문에 여전히 사람의 작업이고, 그래서 차이가 남는다.
예전에는 신규 시스템 설계 경험이 프리미엄이었다. 지금은 흩어진 컨텍스트를 복원하는 능력이 프리미엄에 가까워지고 있다고 본다.
이력서 관점에서도 이게 유리하다. AI로 만든 신규 프로젝트는 “고민한 흔적”을 보여주기 어렵다. 딸깍 한 번과 진짜 설계를 구분할 근거가 결과물에 안 남기 때문이다. 반면 레거시 작업에는 흔적이 남는다. 왜 이렇게 잘랐는지, 왜 여기까지만 손댔는지, 무엇을 포기했는지가 전부 자산이다.
4. 가장 좋은 어필은 “개편하지 않기로 한 결정”이다
레거시 청산으로 어필할 수 있는 건 레거시 환경에서 발생한 문제 해결. 하지만, 이를 뒤집으면 문제가 없는 레거시를 개편하는 건 지양해야 한다는 것.
“오래됐다”는 문제가 아니다. 문제는 비용으로 표현되고, 비용은 측정 가능해야 한다.
- 이 변경을 하려면 며칠이 걸린다
- 이 부분을 건드리면 장애 확률이 올라간다
- 신규 입사자가 이 모듈을 이해하는 데 몇 주가 걸린다
- 배포 한 번에 다운타임이 몇 분 필요하다
그래서 오히려 강한 어필은 ‘개편하자는 요구가 있었지만 안 하기로 결정한 사례’라고 생각한다.
이유를 대고, 대신 무엇으로 대응했는지(모니터링 추가, 경계 격리, 회귀 테스트만 보강 등)를 설명할 수 있는 역량은, AI시대에 큰 강점이다.
정리하며
만드는 비용이 떨어지면 만든 것의 가격도 떨어진다. 남는 건 판단이다. 그리고 판단 과정은 결과물에 안 적혀 있으니, 잘 문서화하자. 그것이 진짜 자산이다.